국제회의를 포기하게 만드는 건 시설이 아니라 통역 견적입니다

포항에서 국제회의를 검토하다 접는 이유는 대개 시설이 아닙니다. 견적서에서 통역 항목을 보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구조가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66%’: AI 통역이 인간을 앞질렀다는 조사 결과

AI 통역 업체 Wordly가 2026년 6월 발표한 「State of AI Translation & Captions」 조사에서, 응답자의 66%가 AI 통역 품질이 인간 통역사보다 낫다고 답했습니다. 여전히 인간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25%에 그쳤습니다. 넷 중 셋이 AI를 최소한 동등 이상으로 본 셈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88%가 이미 AI 통역을 쓰고 있고 91%가 AI 자막을 씁니다. 41%는 모든 행사에 통역을 제공한다고 답했습니다. 도입 여부를 고민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는 뜻입니다.

‘조사의 한계’: 미국·영국 대기업 205명이라는 전제

먼저 밝혀둘 것이 있습니다. 이 조사는 미국과 영국의 직원 1,000명 이상 기업 리더 205명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본사에서 영어를 쓰는 조직들입니다. 한국어처럼 어순이 다르고 존대 체계가 있는 언어의 실시간 통역 품질을, 이 조사는 답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사 주체가 AI 통역을 파는 회사입니다. 유리한 결과가 나올 유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AI가 사람을 대체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선택지가 하나 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선택지가 늘어나는 일은 지방 도시에 대도시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유는 다음 항목의 숫자에 있습니다.

‘하루 200만 원’: 지방 도시가 국제회의를 포기하는 진짜 이유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연구소가 공개한 요율표를 기준으로 보겠습니다. 서울, 1인 1일 기준입니다.

  • 영어 동시통역 100만 원 (6시간까지)
  • 중국어·일본어 90만 원
  • 동시통역은 2인 1조가 원칙이고, 8시간을 넘거나 난도가 높으면 3인
  • 초과 근무는 시간당 15~20만 원

2인 1조 원칙 때문에 언어 하나를 추가할 때마다 비용이 두 배씩 붙습니다. 실제로 계산하면 이렇게 됩니다.

통역 언어 구성필요 인원통역료 (1일)
영어2명200만 원
영어 + 중국어4명380만 원
영어 + 중국어 + 일본어6명560만 원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연구소 요율표 기준(서울, 6시간까지). 부스·장비 임차비와 지방 개최 시 교통·숙박비는 모두 별도입니다.

여기까지는 서울 기준입니다. 지방에서 열면 교통과 숙박이 또 붙습니다. 서울에서 열면 통역사가 출퇴근하지만, 포항에서 열면 1박이 생깁니다. 같은 회의인데 견적이 다릅니다.

이게 지방 도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불리함이고, 건물을 새로 지어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데려오는 비용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재구성’: 사람이 맞는 자리와 AI가 맞는 자리

AI 통역은 부스가 필요 없고, 참가 인원수만큼 비용이 늘지 않고, 언어를 하나 더 추가하는 한계비용이 거의 없습니다. 앞의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49%가 한 행사에서 6개 이상의 비영어 언어를 다룬다고 답했는데, 사람으로는 애초에 감당이 안 되는 숫자입니다.

그렇다고 전부 바꾸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실무적으로는 세 가지로 나뉩니다.

  • 고위급 양자회담, 계약 협상, 법적 효력이 있는 자리 — 사람이 맞습니다. 여기서 아끼면 안 됩니다.
  • 일반 세션, 전시장 부대행사, 워크숍, 기록용 자막 — AI가 현실적인 선택지가 됐습니다.
  • 애초에 통역을 포기했던 행사 — 이제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 번째가 지방 도시에 가장 중요합니다. 통역 예산 때문에 아예 국제 세션을 빼고 기획했던 행사들이 있습니다. 참가자를 국내로만 좁히고, 발표자도 한국어 가능자로만 섭외하던 관행이요. 그 전제가 바뀌었습니다.

‘세션별 분리 견적’: 지금 바로 해보실 수 있는 한 가지

다음에 국제회의를 검토하실 때, 통역을 전부 사람이냐 전부 AI냐로 놓고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션별로 나눠서 견적을 내보세요.

기조연설과 폐회식은 사람, 분과 세션과 부대행사는 AI. 이 조합만으로 통역 예산이 절반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 숫자를 손에 쥐고 나면, 그동안 포항에서는 어렵겠다며 접었던 행사 가운데 몇 개는 다시 검토 대상이 됩니다. 회의는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 겪는 사흘이고, 그 사흘 동안 말이 통하느냐는 그동안 예산 항목 하나에 걸려 있었을 뿐입니다.


참고 자료
Wordly, 「State of AI Translation & Captions 2026」, 2026년 6월. 미국·영국 소재 직원 1,000명 이상 기업의 리더 205명 대상 설문.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연구소 통역 요율표 (서울 기준, 1인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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